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씀/단상

거봐, 너도 벌레지, 너도 벌레지.

벌레. 사람들은 자신이 적대하는 누군가에게, 벌레라는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쉽게 나는 벌레가 되었다. 어쩌면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베하면 일베충이라는 이름이 붙고, 오유를 하면 오유충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이제 막 대학에 들어온 이들은 입학방법에 따라 정시충, 수시충, 논술충, 지균충, 내신충으로 분류되고, 끼리끼리, 서로를 종별로 구분 짓는다. 서로에 대한 말 못할 혐오를 넷 상에서 쏟아내면서 말이다. 사법고시 출신 법무인들은 로스쿨 출신들에게 ‘로퀴벌레’라고 부른다나 뭐라나.

이쯤 되면 곤충대백과사전은, 한국에서 새로 쓰여야 하는 게 아닌가 싶고, 세스코가 대한민국 1위 기업이 아닌 게 신기할 정도다. 타국에서 보면 아마, 한국에서 파브르가 환생이라도 한 줄 알거다. 대학뿐이겠나. 특채와 공채가 편 가르며 싸우는 회사들도 많이 봤다. 편가르기와 순혈주의가 넘치는 세상이다. 그러나 내가 벌레라면, 당신도 벌레일 것이다. 바퀴벌레와 독나방 사이에 구획을 나누어 너는 내 편, 너는 벌레라고 외쳐봤자 메아리 같은 말만 돌아올테다.

나는 누구도 ‘벌레’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상대의 정치성향이 어떻든, 상대가 살인범이든, 상대가 어떤 학벌을 가지고 있든, 출신이 어떻든 간에. 일베를 하는 내 친구들은 벌레가 아니니까. 수시로 대학에 들어간 내 친구는 벌레가 아니니까. 그리고 나는 벌레가 아니니까. 그래도 나를, 내 친구를, 너 자신을 벌레라고 부르고 싶다면, 난 이 말을 하고 싶다.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있다. 벌레는 과일이 썩지 않으면 속으로 파고들지 못한다고. 만약에 네 말대로 내가 벌레라면, 그건 이 거대한 사과가 썩었기 때문에 생겨난 걸 테다. 이 많은 사람이 다 벌레라면, 썩어도 단단히 썩은거겠지. 그렇다면 나는 이 사과가 얼마나 썩었는지 내 온 몸으로 증명해 보일테다. 다음 사과를 또 다시 썩히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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