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침몰한지 열흘하고도 수 일이 더 지났다. 현실적인, 또는 비현실적인 이유들로 구조 작업은 지연되었고, 그 때문에 사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우리는 애도하고, 또 애도했다. 나는 너무나도 아픈 이 죽음들에 대해, ‘애도’라는 두 글자를 제외하고는 어떤 말도 가벼이 내뱉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지금까지 말을 아껴왔다. 그런데 어젯밤, 너무나도 황당한 소식을 접했다.
요는 이렇다. 고양시 아람누리에서 4일 간 열리기로 되어 있던 ‘뷰티풀 민트 라이프’라는 공연이 있었다. 아람누리에서 2010년부터 5년 째 열리는 (혹은 그럴 계획이었던) 공연이다. 그러나 백성운 고양시장 새누리당 예비후보는 이 공연에 대해 지난 25일 ‘세월호 통곡 속 풍악놀이 웬말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해 “고양시 아람누리 노루목 야외극장에서 대규모 인디밴드 음악 페스티벌을 강행”하기로 했다고 밝히며, “신나는 음악 등을 하루 종일 연주하며 입장객들에게는 맥주를 제공키로” 했다고 주장했다. 비판의 요지는 “수학여행을 떠난 325명의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승선한 여객선이 침몰하면서 온 국민이 비통에 잠긴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인데도 술 마시며 강한 흥겨운 가락에 흥겨워해도 되느냐”면서 공연을 취소하지 않은 고양시 측과 고양시장을 비판했다. 공연을 취소하지 않으면 공권력이라도 동원하겠다고 했다. 결국 백성운 예비후보의 바람대로 공연은 취소되었고.
그러나 과연 그럴까. 애초에 뷰티풀 민트 라디오는 “강한 흥겨운 가락에 흥겨워하는” 공연이 아니라,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공연이다. (언니네 이발관이 흥겨우면 얼마나 흥겹겠는가! 디어클라우드를 들으며 춤이라도 춘다는 건가!) 게다가 공연을 주최하는 민트페이퍼는 고양시 측에 세월호 사건과 관련하여 애도하는 분위기로 공연을 축소, 변경하겠다는 계획을 거듭 밝혔다. 공연을 며칠 앞두고서 하기는 무척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공연을 취소하겠다는 통보’ 뿐이었다.
황당하다. 우선 이 ‘강요된 애도’는 애도의 본질마저 잊어버렸다는 느낌이 든다. 누군가의 죽음에 함께 아파하고, 또 그 아픔에 공감하는 것을 애도라고 본다면, “당신이 그들의 죽음에 애도하지 않는다면, 공권력이라도 투입하겠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말’이다. 공감과 아픔은 누구도 강제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게다가 민트페이퍼 측은 함께 슬퍼했으며, 함께 아파했다. 그 슬픔을 관객들과 나눌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 취소가 강행’된 것은 음악, 특히 대중 ‘저급하고’ 그저 ‘흥겨우며’, ‘즐거운’ 노래로만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불과 일주일 전에 열린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의 독창회는 취소되지도 않았고, 심지어 박수와 환호 속에서 진행되었다는 역설은 그런 의미에서 납득이 간다. 대중음악은 그러나 위로이며, 북돋음이고, 포옹이었다. 내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힘들어할 때 내게 가장 힘이 되어준 건 누군가의 애도가 아니라, 에픽하이의 음악이었고, 브로콜리 너마저의 가사였으며, 아침의 멜로디였다. 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음악은 더욱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지금 결방되고 있는 각종 예능프로그램들, 음악프로그램들 역시 다시 전파를 타야 한다고 생각한다. 침통해 하고 있는 이들에게 잠깐이나마 웃음을 줄 수 있는 이들이 필요하다. 단적으로 말해서,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다고 애도를 위해 일을 하지 않는 직장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니 누구도 이 엔터테이너들에게 애도를 위해 일을 멈추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누군가에게 음악은 생계가 걸린 일이고, 무대에 잠깐이나마 서 얼마 되지 않는 출연료라도 받아갔어야 할 신인 개그맨들도 있다. 누군가가 노래한다고, 웃는다고 그들이 애도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누군가는 그들이 노래를 통해, 그 웃음을 통해 그 긴 아픔을 버텨나갈 힘을 얻을 테니까. 잠깐의 웃음이 더욱 긴 시간을 견디게 할 힘을 주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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