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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에세이

8,600원이 사라졌다

황당하다. 작년 1학기쯤인가,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었다. Html 프로그래밍에 관한 책이었는데 기말고사 준비하니, 뭐하니 결국 몇 자 보지도 못했다. 그러다 어느새 학기가 끝나버렸고, 나는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문제는 책을 반납해야 해서 도통 도서관에 갈 시간이 없었다는 거다. 학교 도서관이 열려 있는 시간에 나는 대개 직장에 있거나, 아님 집으로 퇴근하는 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주말에 반납기에 책을 반납했다. 연체료도 따로 전달했던 것 같다. 비용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8,600원. 당시 직장은 다녔지만 일한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었고, 월급도 다음달 말일에나 받을 수 있었다. 워낙 돈이 없었기 때문에 무척-무척-무척 힘들게 마련한 돈이었다. 없는 돈, 있는 돈 다 털었다. 연체료가 더 커가는 것보다 그게 나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연체료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8,600원. 나는 분명 직원에게 전달한 기억이 나는데. 뭘까 싶었다. 도서관에 가 물었다. 내가 연체료를 납부한 기록이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분명 도서관 직원과 연체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게 생각나고, 그래서 그 연체료만큼을 봉투에 담아두었던 것까지 기억이 나는데 말이다. 어쨌든 도서관에서는 나에게 돈을 받은 적이 없고, 그 어느 곳에도 기록이 되어있지 않고, 심지어 남은 돈조차 없으므로- 자신들은 돈을 받지 않은 것이라 했다.

자리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는 돈을 누구에게 주었는가. 그 돈은 대체 누가 가져갔는가. 당시 나는 책과 연체료를 함께 전달할 방법에 대해 도서관에 전화해 물었었다. 직원은 연체료를 책과 함께 반납기에 넣어 달라고 했다. 주말에 반납하면 그 전 금요일에 반납한 것으로 처리되기에 월요일에 반납하는 것보다 연체료가 적을 것이라는 말도 했었다. 그래서 돈과 함께 책을 반납기에 넣었었다. 그리고 지금, 그 8,600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체 누구의 담배가 되었는가. 대체 누구의 술이 되었는가. 대체 누구의 군것질과 누구의 꽁돈이 되었는가!

억울한 일이다. 나는 책 한 권을 늦게 반납한데다가 오라는 도서관은 안 오고 직장을 다닌 죄로 17,200원의 돈을 지출하게 된 것이다. 몹시 분하다. 만약 내게 지금 8,600원이 있었으면 점심으로 학식 라면 대신 옆동네 파스타 가게를 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며, 빈 강의실에 앉아 타자를 두드리는 대신 어디 카페라도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시사주간지를 하나 사서 탄핵 이후 정국과 한국 정치의 미래에 대해 진중히 고민하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없다. 8,600원은… 그 기록에조차 남아 있지 않은 돈을 추억하며 쓴다. 나의 연체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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