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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에세이

2015년을 보내며.

도무지 가지 않을 것 같던 2015년이 다 가버렸다.

작년의 이 날 이 시간, 나는 친구랑 같이 있었던 것 같다.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도 같고, 치킨을 먹고 있었던 것도 같다. 연애나 축구에 관한 진부한 이야기와 진부한 고민들을 나누었던 듯도 하고, 약간 취한 채 어질러진 기분으로 낯선 방에 누워 있었던 듯도 하다.

친구는 먼저 잠 들었다. 내 옆에서였는지, 아니면 다른 방에 가 문을 잠그고 잠이 들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새해가 땡 하고, 스물 네 살이 되었다는 걸 느끼고 조금은 허탈해했다. 지금 이때가 되도록 뭘했나, 내 옆에 남은 사람들이 별로 없구나. 그런 생각. 그래서 지인들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잘 지내세요,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올해는 부디 잘 지내라. 가까운 사람, 먼 사람, 친한 친구, 소원한 사람, 그러나 그냥 의례적인 인사를 하고 싶지는 않아서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르게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그때 메시지를 보냈던 사람들 대부분은 나와 아직도 소원한 관계다. 며칠이 지나도록 답장 하나 없던 이들도 수두룩하다. 필요할 때만 찾고, 아닐 때는 잊게 되는 관계이거나.

2015년, 작년은 사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됐던 한 해였다. 적과 친구, 동료와 그렇지 못한 사람이 명백하게 나뉘었다. 많은 사람들을 잃었고, 또 그만큼 좋은 사람들을 새로 만났다. 그 분들에게 많은 것을 얻었고 또 많은 것을 배웠다.

나의 동료와 친구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는 한편, 적이 되거나 멀어진 이들을 애써 욕하고 싶지는 않다. 살다보면, 원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관계들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분들도 부디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몇 십 년 후에 이천십오년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을 나를 생각해본다. 그는 아마 이천십오년을 그래도 행복했던 한 해, 쯤으로 묘사하지 않을까. 그래, 뭐 이 정도면 잘 살았다. 행복했다.

몇 십 년 후에 이천십육년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을 나도 생각해본다. 그는 아마 이천십육년을 이천십오년보다 훨씬 행복했던 한 해, 쯤으로 묘사할 거다. 나는 잘 살 거다. 언제나 그랬듯이.

무슨 상이라도 받고 수상소감 얘기하듯 길게 몇몇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적다가 그만두기로 하고 그냥 따로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 그래도 인사. 여러분, 2015년 참 감사했습니다. :) 내년도 잘 해봅시다 우리.

생각해보니 이 짧은 글을 2년에 걸쳐 쓰고 있었다. 오래도 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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