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씀/기사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돈을?”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돈을?”

기본소득, ‘불안정노동사회 대안’으로 떠오르다

 

허경영 민주공화당 총재는 지난 10월 9일, MBN에 출연해 대선 출마 의지를 보이며 ‘모든 국민에게 한 달에 1300만원 씩 배당하는 국민배당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많은 누리꾼들이 국민배당제에 관해 관심을 보였으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불가능하다.” “말이 안 되는 정책이다.” 등의 부정적 반응이 이어졌다.

 

누리꾼들의 우려에도 이런 정책이 실현 불가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홍콩, 싱가폴, 유럽 등 일부 국가들에서는 이와 비슷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거나 시행을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바로 ‘기본소득’이란 정책이다.

 



‘기본소득(Basic Income)’은 노동 여부와는 무관하게 모든 개인에게 정부가 매월 지급하는 ‘최저생활비’를 뜻한다. 한국에서는 사회당이 ‘기본소득’을 당론으로 내세운 바 있으며, 제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금민 후보가 이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 대학생사람연대 등이 ‘모두에게 조건 없는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서울광장 오큐파이 운동을 주도했던 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와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2012 기본소득 국제대회’를 열기도 했다.

 

찬성 측 “기본소득 통해 3D 업종 근로조건 향상”

 

기본소득 찬성론자들은 기본소득이 ‘대량실업’과 ‘불안정노동’ 때문에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의 주장은 이렇다. 갈수록 ‘일자리 늘리기’는 어려워져 실업은 늘어나게 된다. 그렇다면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실업을 줄여야 하는데, 그를 위해서는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임금은 줄어들게 되고, 줄어든 임금으로는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없다. 그렇게 줄어든 임금을 기본소득으로 보완한다는 것이 찬성론자들의 주장이다. 또한 기본소득을 통해 3D(Difficult, Dirty, Dangerous) 업종의 근로조건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이 ‘기본소득’이 필요한 이유로 꼽힌다. 기본소득의 도입이 일시적으로 3D 업종에 대한 지원율을 낮춰, 기업주가 임금 등의 조건을 상향하게 할 것이라는 것이다.

 

반대 측 “기본소득 재원마련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지만 기본소득이 한국에서도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은 제기될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 비판론자들은 ‘기본소득의 재원마련이 어려울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지급할 때 소요되는 재정은 약 250조원인데 반해, 총 국세는 187조원(2011년 기준) 정도이다. 단순하게 세금의 사용처를 바꾸는 정도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기본소득의 도입이 인플레이션(inflation)을 불러 올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성공회대 학생들의 의견도 엇갈렸다. 오병헌(25, 사회과학부) 씨는 “노동자의 힘이 약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기본소득과 같은 복지제도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며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에 비해 하태성(20, 신문방송학과) 씨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돈이 필요하다. 그 돈은 국가가 반드시 지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기본소득의 도입에 찬성했다.




기본소득 지식인 담론 벗어나…여러 분야에서 논의 활발

 

과거에는 ‘기본소득’ 정책 자체를 아는 이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러 공론장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쟁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청년대선캠프와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가 1310명의 청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청년경제생활실태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25.3%의 응답자가 “‘기본소득’을 필요로 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좌파’ 제안자 박정훈 씨는 “기본소득은 이제 지식인의 이론이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났다.”며 기본소득 운동의 성과를 설명했다. 기본소득이 이제 더 이상 ‘특정계층’의 이론이 아닌 대중적 의제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기본소득’ 도입은 요원해 보인다. 박 씨는 “불안정노동을 기반으로 한 사회에서 기본소득이 대안이 될 수 있지만, 기본소득을 요구하는 운동의 주체들을 형성하는 것이 남은 과제”라고 말하며 기본소득의 도입이 쉽지만은 않을 것임을 밝혔다.

 

지난 총선에서 녹색당은 ‘농민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택했다. 최근 무소속 김순자 대선후보 역시 공약으로 ‘기본소득’을 들고 나왔다. 시민사회와 정치권 등 여러 분야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 만큼 기본소득이 한국에서도 빛을 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찬우(잉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