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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1.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강간/살인/방화 등 중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조선인들을 일본에서 내쫓아야 합니다."
"자이니치의 자식들이 학교에 다니면 재특들은 일본에서 영주권을 얻는다. 이건 말도 안 된다. 자이니치를 추방법을 만들어야 한다. 게다가 그 학교도 일본인이 낸 세금으로 운영된다."
"재특들은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일본에 얹혀 살며 무임승차 하고 있다."
"조선인들이 일본 청년들의 일자리를 다 빼앗아가고 있다. 조선인들 때문에 일본의 실업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CASE 2.
"인권을 인정해달라고? 흑인은 우리 같은 일반인들과 다른 존재이다. 그들을 이해할 생각은 없다."
"흑인을 차별하자는 건 아니지만, 흑인들이 위생적이지 않은 건 사실이다. 아프리카의 에이즈 발병률만 봐도 증명되지 않나."
"흑인에게 인권이 있다면 흑인을 혐오할 권리가 나에게도 있다."
위 글들은 몇 커뮤니티(들)의 게시판에서 가져와 다듬어 정리한 것이다. 어떤 생각이 드나. 아직도 이런 뒤떨어진 사고를 하는 집단이 있다니,하고 놀랐을지도 모르겠다. 21세기에 인종주의자라니. 누가 아직도 인종 차별을 해? 그렇게 생각했으려나. 그렇다면 한 가지 묻겠다. 그 댓글과 게시글들, 출처가 과연 어디일 것 같나. 답은 뻔해 보인다. 자이니치(재일한국인)들을 향한 일본인들의 '근거 없는' 공격심과 적대감이 느껴진다. 당연히 재특회 홈페이지나 2CH(일본의 우익성향의 게시판, 한국의 DC 인사이드와 종종 비교된다.)를 떠올렸을 것이다. 두 번째는 어딜까. 흑인들을 향한 편견과 혐오가 서려있는 말들이다. 러시아 스킨헤드들의 웹그룹인가? 아니면 KKK(Ku Klux Klan, 미국의 백인우월주의 집단)? 미안하게도 그렇게 생각했다면 틀렸다.
놀랍게도 (혹은 예상대로) 위 게시글들은 한국의 '평범한' 웹 커뮤니티들에서 가져왔다. 다만 내가 의도적으로 고친 부분이 있다면, '외국인노동자'라는 단어를 '조선인, 혹은 자이니치'로 바꿨을 뿐이라는 것. 또 '동성애자'라는 단어를 '흑인'으로 채워 넣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의도적인 왜곡이나 곡해인가. 아니 그렇지는 않다. 나는 그들의 논리를 단 한 자도 건드리지 않았다. 비슷한 성향, 성격을 가진 한 단어를 다른 단어로 바꾸었을 때 논리가 빈약해 보인다면, 그건 내가 글들을 특별히 왜곡했기 때문이 아니다. 애초에 그 논리가 혐오와 편견, 왜곡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여기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이 있다. 내가 말한 '평범한' 웹 커뮤니티들이 사실은, 일베나 DC인사이드처럼 극우적, 혹은 보수적 성향을 띄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들은 앞선 커뮤니티들과 대립하며, 상대적으로 진보적 성향으로 일컬어졌던 곳들이다. 오늘의 유머, 싸커라인, 루리웹, 클리앙, MLB파크 정도로 나열할 수 있으리라.
위 논리들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제노포비아와 호모포비아라는 차별과 편견, 더 나아가서 폭력을 묵인하고 방관한다는 데에서, 혹은 폭력을 폭력이 아니라고 말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극우적인' 경향성을 띄게 된다. 일베에서 '전라도'를 비난하는 어투나, '진보'를 비난하는 논조를 떠올려보자. 이들이 외국인을 혐오하고, 동성애자를 비난하는 논리가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은 실로 당혹스럽다. 나는 이들이 사대강을 힘차게 헤엄쳐 오르는 로봇 물고기는 싫어하면서, 동시에 이명박이 창조해 낸 청계천을 좋아한다고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이명박의 FTA는 비판하면서, 노무현의 FTA에는 수긍하는 '일관적인 비일관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정치적 원칙, 정치적 신념이 아니라 인물에 대한 믿음과 지지만으로 정치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들이 진보적 인사에 대한 비판에 보수적으로 반응하고, 보수적 인사에 대한 비판에만 진보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이 '진보시민의 민낯'은 얼마 전 있었던 두 가지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첫 번째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인권헌장. 서울시는 서울 각지에서 지원한 인권위원들에게 ‘인권헌장’ 제정을 일임했다. 서울시민의 인권을 바로 세우는 일이었다. 학생인권조례가 그랬고, 차별금지법이 그랬듯이 당연히 어느 정도 논쟁이 있을 법 했다. 한국산 과자가 물 위에 뜬다는 것만큼이나 뻔한 일. 아니나 다를까. 인권헌장 공청회에는 기독교 신자를 참칭하는 호모포비아들이 몰려와 진행을 방해했다. 인권운동가들이 현장에서 맞섰지만 돌아온 것은 모욕과 혐오, 욕설뿐이었다.
이런 논쟁과 논란 끝에 인권위원들은 ‘성소수자 차별금지’를 포함한 인권헌장을 통과시켰다. 절차적 당위성이 있었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은 만장일치가 아닌 인권헌장이 무효라고 주장했으며,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논리적 비문으로 빈축을 샀다. 허니버터칩도 물에 뜨는 걸 보니, 역시 한국과자는 한국과자였나 보다. ‘인권변호사라던 박원순도 그냥 정치인이었나 보다,’하는 류의 실망이 서울을 뒤덮었다. 인권운동가들이 몇 개월 간 분투해 만들어 낸 인권헌장이 무너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들은 서울시청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그러나 ‘오늘의 유머’에는 ‘성소수자들이 개독들한테는 왜 가만히 있다가 만만한 박원순에게 화풀이냐.’는 식의 게시글이 등장했다. 다른 커뮤니티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댓글에는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 발언이 이어졌다. 급기야 ‘니 맘에 안 들면 혐오발언이냐’는 경악스러운 발언까지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성소수자 인권운동가들이 기독교 단체들과 어떻게 싸워왔는지에 대해선 눈꼽만큼의 관심도 없어 보였다.
박원순의 선택을 비판하는 기사에는 박원순을 흔들지 말라는 댓글이 달렸다. 박원순을 노무현처럼 잃을 거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다. “동성애자에게 인권이 있는데, 왜 나에게는 동성애자를 혐오할 권리가 없냐.”며 어떤 진보시민은 말했다. 노란 리본이 그려진 프로필 사진을 달고서. 기막힌 노릇이었다. 반박하기조차 민망한 무논리였다. 거기에 답을 하느니 차라리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겠단 사람들을 욕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또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지난 한 커뮤니티에 ‘이자스민 의원 미친 법안 발의된다’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많은 추천을 받았고, 많은 댓글이 올라왔다. 글 내용을 살펴보자면 대충 이렇다. ‘필리핀 출신의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은 불법체류자의 자녀들에게 특혜를 주는 법안이다. 불법체류자 자녀들에게 교육, 육아, 의료 등의 복지혜택을 주고, 이 자녀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가족들을 강제추방에서 면제해준다. 주민세나 소득세, 건강보험료도 안 낼뿐더러 군대도 안 가는데 한국인과 똑같은 복지를 받는다. 필리핀이나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등지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밀입국 하는 경우가 급증할 것이다.’ 아니, 이런 천인공노할 내용을 다 보았나. 지하에서 이순신 장군이 분노해 일어나시겠네! 이게 사실이라면, 어디 이런 황당한 내용의 법안이 다 있단 말인가! 그래. 이게 사실이라면, 이게 사실이라면.
“불체자, 외노자들. 더러운 다문화.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특혜만 받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을 하루 빨리 한국에서 내쫓아야 한다,” “세금을 내면 몰라, 세금도 안 내면서 어떻게 이렇게 무임승차를 할 수 있냐. 이자스민도 필리핀으로 돌려보내라." 분노의 댓글이 이어졌다. 인터넷 신문고에는 항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국회 입법예고시스템의 댓글에는 무려 8000여건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반대, 반대, 반대. 나라를 팔아먹니, 어쩌니하는 비난들. 을사조약이라도 다시 체결하는 건가 싶었다.
그러나 언론사들의 취재 결과, 이는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된 내용의, 발의된 법안은 단 하나였는데, ‘아동복지법 일부 개정안’이 바로 그것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이 법안이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을 대표로 하여 발의되었다는 것 정도랄까. 법안의 내용을 살피자면 이렇다. 의료혜택과 의무교육 등 복지 서비스를 불법체류자 자녀들에게도 제공하는 것은 맞으나, 이는 인도적 차원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었다. 정청래 의원은 이를 두고 “우리나라가 1991년 UN의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을 비준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시 부모의 신분에 상관없이 아동의 체류권, 교육권, 보호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게시글과 달리 이 법안에서는 가족의 추방을 면제해준다는 내용을 눈을 씻고 찾아볼래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것이 팩트였다. 그러나 이자스민 의원을, 또 이주노동자를 향한 혐오의 눈길을 강하게 드러냈다는 데서 우리는 다시 진보의 맨얼굴을 봤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다. 지난 4일, 경기도 수원 팔달산 인근에서 장기가 없는 시신의 일부가 발견된 바 있다.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앞다투어 보도했고, 인터넷 게시판들도 이 사건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뜨거웠다. ‘진보 커뮤니티’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기묘한 살인사건’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기사 한 구절이 문제가 되었다. “‘장기밀매 범죄와 연관됐을 가능성도 열어 놓고 다방면으로 수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장기밀매 한 구절이 추가되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댓글로 이주노동자를 범인으로 지목하기 시작했다. 같은 수원에서 살인사건을 일으켰던 오원춘이 조선족이라는 점을 들어, 이번에도 조선족일 거란 다소 황당한 추론이 이어졌다.
급기야 며칠 후, 이런 내용을 한 장문의 카카오톡 메시지까지 떠돌기 시작했다.
☆긴급 알림☆
다들 아시다시피 수원 팔달산 장기없는 시신발견 관련하여 오원춘 사건, 화성 여성납치 미제사건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요즘 납치가 상당히 빈번합니다. 보통 조선족이 한국 젊은 남녀를 노립니다. 인신매매인데요. 어디 가게에 파는 게 아니라 장기매매를 합니다. 잡아서 기절시킨 후 바로 작업(영화 원빈의 아저씨라는 영화 보시면 나와요)해서 몸안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아이스박스에 넣어 공급됩니다. 외국인 노동자들 특히 조선족들이 국내로 들어오기 - 이후부터 갑자기 늘었습니다.
통계적 근거도, 과학적 근거도 없이 오로지 편견과 의심에만 가득 찬 글이었다. 경찰이 ‘장기적출 흔적은 없다. 장기가 이식가능한 형태로 적출되지 않았고, 조직된 범죄일 가능성도 낮다’고 밝혔지만 막무가내였다. 조선족 이주노동자 K 씨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오원춘 사건 이후로 지하철에 타면 제 옆자리가 비어 있어도 사람들이 앉지 않으려 하기도 한다”며 편견이 섞인 시선의 괴로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진보시민들 역시 댓글을 통해 근거 없는 혐오감을 숨기지 않았다.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5대 범죄 일으킨다는데, 이렇게 가만히 둬도 되는 겁니까. 길거리 돌아다니기 무섭습니다.” 진보적 보편 가치라 일컬을 수 있는 ‘인권’이 왜 진보시민들 앞에서조차 부정당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음, 처음으로 돌아가자. 글이 너무 무거워지니 좀 가벼운 이야기나 하나 해볼까. 대학 입학을 앞둔 철수의 집에는 느려 터진 컴퓨터가 있었다. PC통신 시절에 쓰이던 것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두터운 모니터와 무거운 본체를 자랑하는 고물이었다. 그러나 지금이 어느 때인가. 정보의 바다가 범람하고, 카톡의 홍수가 몰아치는 21세기. 그가 가진 핸드폰은 '전화만 하라고' 받은 08년 식 피쳐폰이었다. 더 이상 이대로 지낼 순 없었다. 친구를 사귀고 말고는 둘째 문제였다. 우선 그의 컴퓨터로는 파워포인트나 한글 하나 돌리기도 버거웠기 때문이다. 그는 컴퓨터를 바꾸기로 했다. 친구 말로는 조립식 컴퓨터가 싸고 좋단다. 조립은 아버지에게 부탁하지,하는 마음으로 조립식 컴퓨터를 사기로 했다. 컴퓨터 부품 장사를 한다는 옆집 아저씨에게 부탁하는 게 좋을 것이다. 아, 옆집 아저씨. 그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오글거림이 변기에서 흘러 넘쳐 욕실을 가득 채울 것 같았다. 철수는 눈 딱 감고 한 번만 부탁하기로 했다.
어렵게만 생각했던 아저씨는 의외로 친절했다. 철수에게 자세한 설명과 함께 이런 저런 부품을 추천해주었다. 생각보다 값이 나가긴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에이, 아는 사인데 어련히 좋은 거 해주셨겠지. 그래픽 카드는 어디꺼, 하드는 또 어디꺼, 메모리는 또 어디꺼. 이름도 생소한 브랜드들이 튀어 나왔다. 그에게는 너무 낯설어 변희재 같은 이름이었다. 아는 사이라 조립도 해주시겠단다. 컴퓨터를 잘 몰랐던 철수는 그냥 믿고 맡기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뿔사, 집에 와서 컴퓨터를 켜 보니 도저히 작동이 안 되는 것이다. 뭐지, 뭐가 문제지. 그러나 그가 도저히 알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아예 켜지기나 해야지. 집에 퇴근하신 아버지가 컴퓨터를 열어보더니 얘기하는 것이었다. "야, 이게 뭐야. 파워도 없고 메인보드도 없잖아! 이걸 그 돈 주고 산 거야?" 철수는 당혹스러웠다. 어라. 그럴 리가 없는데. 그 사람 좋은 아저씨가 나에게 사기를 칠 리도 없고. 에이, 그 아저씨가 더 전문가일텐데. 아빠가 잘 모르는 거 아녜요?
당신은 여기 철수에게 무어라고 말해주겠는가. 멍청했다고? 메인보드나 파워, CPU 없이 무슨 컴퓨터가 돌아가겠느냐고? 컴퓨터를 잘 모르는 건 너지, 너희 아버지가 아니지 않냐고? 글쎄. 그러나 우리는 위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들을 봤다. 자, 여기 자신들이 원하는 '진보적 가치'만 취사선택해, 자신의 스타일대로 배치해 입을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진보 코디네이터들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진보는 철수가 만들었던 조립식 컴퓨터가 아니다. 아니, 그들의 말대로 어떤 가치는 선택하고 어떤 가치는 배제해 ‘진보 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고 치자. 어떤 램을 고를 것인지, 어떤 CPU를 선택할 것인지는 얼마든지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모두가 기계적 진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그럼에도 램이나 하드, 메인보드가 없는 컴퓨터를 만들어서 대체 어디다 쓰겠다는 것인지,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꾸역꾸역 만들어 낸 컴퓨터가 486 수준이라는 것이다. (위 커뮤니티의)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다음 선거에서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 동성애자를 '버리고' 가야 한다고. 그런데 말입니다. 누군가를 배제하고 만들어진 진보가, 앞으로 '표를 위해' 다른 누군가를 또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이 있을까요? 나는 잘 모르겠는데 말입니다. 게다가 '버려진 자'들이 지지하지 않겠다는 데 고함을 지르다니요. 그것이 과연 진보일까요. 내가 진보감별사도 아니고, 진보자격증 같은 게 필요하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만, 무엇이 진보다,라는 최소한의 합의점은 바로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이겁니다.
물론, 나는 '진보적 커뮤니티'라고 불리는 곳을 이용하는 '네티즌'들이 모두 같은 의견을 가지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일베와 같은) '네트워크 아미(Network Army)'가 되어야 한다고 믿지는 않는다. 오히려 서로 다른 의견이 끊임없이 맞부딪히고, 떠오르고 가라앉는 토론의 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추천-비추천 시스템에 의해 하나의 의견이 과잉대표화되고, 소수의 의견은 더 축소되는 경향이 강할 수밖에 없는 네트워크 환경은 이른바 '진보 파시즘'에 대한 우려를 하기에 충분하다. 다시 한 번 그러나, 나는 '사실'이 새로 알려진 뒤에, 진보 커뮤니티들에서 의견의 물갈이가 빠르게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이는 오유 같은 커뮤니티들이 아직 제노포비아, 호모포비아와 싸우며 스스로 자정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을 보여 준 사례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우리의 ‘진보시민'들이, 더 이상 이분법적 정치논리─박원순을 비판하면 일베의 프락치다 하는 식의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도 건전한 토론, 발전적인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또 그것은 사람을 지지하지 않고, 사람을 믿지 않으며, 자신의 정치적 지향, 신념을 확고히 할 때만 가능한 법이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 또 어떤 집단에서든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그 집단이 정말 어떤 이들인지를 파악하는 법은 그 실수에 대처하는 방식과 방법에서 나온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의 시민들이 나치의 과오를 얼마나 반성하고 있는지 우리는 잘 알지 않나. 잘못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사과는 아무나 할 수 없는 법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과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다소 어설픈 결론이겠다. 그러나 나는 내가 목격한 진보시민들의 처절한 민낯이, 진짜 얼굴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사람이 며칠 야근하고, 스트레스도 받고 그러다보면 피부도 푸석해지고, 입술도 트기 마련이거덩. 나는 그들이 세수도 좀 새로 하고, 멀쩡한 정신으로 만나 내게 다시 새 얼굴을 보여줬으면 한다. 박원순을 지지하지 않으면, 노무현을 추모하지 않으면 새누리당과 다를 것 없다고 말하는 그런 얼굴 말고. 성소수자의 인권은, 이주노동자의 인권은 인권이 아니라고 말하는 그런 얼굴 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