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에는 패셔니스타들만 산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이다. 일단 대통령부터가 그렇다. 해외순방을 할 때마다 색색 별로 옷을 바꿔 입는다. 각종 방송, 신문사에서 그의 행보를 패션 외교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나라에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도 그의 패션 정치는 멈추지 않는다. 다른 나라의 대통령까지 애도를 표하며 검은색 옷을 꺼내 입는데, 그의 옷은 어두워지는 법이 없다. 국민들의 마음이 어두울 때 시선마저 어둡게 할 수는 없다는 뜻이리라.
그런데 얼마 전부터 대통령이, 법안 하나를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었다. 나라에 무슨 일이 생기든 그는 그것이 바로 그 법안이 있어야 하는 이유라 잘라 말했다. 심지어 그 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국가안보에 큰 타격이 올 것이라고까지 주장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수긍했고, 그 법안을 반대하는 이들을 손가락질했다. 그 법안의 이름은 바로 ‘패션테러방지법’이었다.
얼마 전부터 나라 밖에서는 각국 시민들을 상대로 한 패션테러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들의 목표는 그들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 마스크, 복면, 가면 등의 아이템이 무기였다. 아마도 대통령님께서는 그 테러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던 중이었으리라. 대통령은 마스크, 복면을 쓴 이들을, 해외에서 일어난 테러에 동조한 패션 테러리스트라고 명명하고, 그들을 잡아 넣을 것을 주문했다.
나라 밖의 테러리스트들이 셔츠의 깃을 세우고 있었다는 소리도 있고, 흰 양말에 검은 구두, 몸에 딱 붙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는 증언도 있었지만, 대통령은 오로지 마스크만으로 연관성을 증명했다. 대통령께는 범인에게 보이지 않는 패션 테러리스트를 감별할 수 있는 눈이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패션 테러리스트를 잡을 수 있도록 온 우주가 나서서 그를 도와주고 있는 걸지도 모르고.
그런데 문제는, 패션테러방지법이 대체 누구를 잡을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패션테러방지법은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정보를 마음껏 수집할 수 있었다. 패션테러위험인물은 ‘패션 테러단체의 조직원이거나 패션테러단체 선전, 패션테러자금 모금, 기부 기타 테러예비, 음모, 선전, 선동을 하였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라고 규정했지만, 패션테러단체와 옷이 조금 비슷하다고 패션테러범이라고 우기면,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심지어 여당조차도 이 법안이 옆나라인 적국을 막을 수 있다고 속이고 있었다. 테러단체에 대한 정의는 패션국제기구가 하는데, 해당 기구는 옆나라를 테러단체라고 규정한 적이 없었다. 격한 국민감정을 이용한 여론몰이였다.
패션테러위험인물에 대한 수사는 패션정보원이 담당하게 되어 있었다. 패정원에겐 혐의가 있는 이의 옷장부터 속옷 같은 내밀한 부분까지 살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국민의 자율권과 프라이버시가 심각히 침해되는 것이다. 옷장을 살피는 게 대체 국가안보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설명되지 않았다. 외부에서 날아오는 마스크를 법을 통해서 막을 수 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패션정보원이 잘하면 될 일이다. 국민들이 패션정보원을 신뢰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이들은 지난 대선에서 선거에 개입해, 그들이 원하는 색의 옷을 입는 이를 대통령으로 만들려 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나라의 국민은 패션정보원을 더는 신뢰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옷을 잘 입으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선거 때 그랬던 사람들인데, 자신들 맘에 안 드는 옷 입었다고 잡아가면 어떡하나.” 그 공포만으로도 충분히, 국민들의 패션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대통령'님'께서는 이 법안의 통과를 애써 강행하려 하고 있다. 행정부와 의화가 엄연히 분리된 민주주의 국가. 이 나라에서 행정부의 수반은 여당을 압박하고, 야당을 비난해 왔다. 이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나라가 무너질 것처럼!
그러나,
이 나라는 민주주의 사회고, 누구든 자기가 입고 싶은 옷을 입을 권리가 있다. 국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옷을 입는 게, 어려운 일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패션테러방지법이 통과되는 것, 보고 싶지 않다. 나는 그냥 내 마음대로 입고 싶다. 단지 그뿐이다. 그렇습니다, 판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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